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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조언이 나를 살릴까?

loose 2024. 3. 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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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에 있는 글을 가져온 것이다.

 

혹독한 조언이 나를 살릴까?

 

web.archive.org

 
우리 주변에서 종종 혹독한 조언, 소위 뼈 때리는 조언을 해주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좋아해주는 사람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혹독함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평이 나오려고 하면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아포리즘으로 이 폭력성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혹독함이 우리를 성장하게 할까요.

심리상담학계에는 전설적인 다큐멘타리가 하나 있습니다. 일명 글로리아 필름(Gloria Film)으로 불립니다. 1964년도에 촬영되었습니다.

글로리아라는 일반 여성을 당대 최고의 심리상담가 3명이 각기 약 30분씩 돌아가며 상담을 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타리입니다. 참고로 3명의 상담 후에는 글로리아에게 누구에게 상담을 받겠냐고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 세명은 인간 중심 상담의 선구자 칼 로저스, 게슈탈트 치료의 선구자 프리츠 펄스, 합리정서행동 치료(REBT)의 선구자 알버트 엘리스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사람들인데, 한 사람을 두고 서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상담하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어 심리상담자들에게 매우 교육적인 영상입니다.

그런데 이 필름은 상담학계에 나름 많은 논란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이유는, 예를 들면 칼 로저스는 굉장히 잘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방식을 보여주는 반면, 프리츠 펄스는 직면하고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는 식으로 진행하는(https://youtu.be/8y5tuJ3Sojc 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 대조적인 상담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옵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펄스는 글로리아를 화나게, 그리고 복종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글로리아를 사기꾼(phony)이라고 말하고, 멍청한 척한다(playing stupid)고도 했습니다.

글로리아 필름을 상담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대부분 글로리아는 칼 로저스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의외로 촬영이 끝나고 글로리아는 프리츠 펄스를 선택합니다. 글로리아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믿음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그녀에게 선택의 이유를 묻자, 자신에게는 프리츠 펄스 방식이 가장 가치있을 것 같다(could be the most valuable to me)고 했습니다.

사실 스토리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그러고 1년 후에 칼 로저스가 진행하는 워크숍에 글로리아가 참석하게 되고, 이 상담 영상을 함께 보다가 흥분해서 그자리에서 일어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저는 그 사람이 시키는 걸 다 한거죠?! 왜 그 사람이 저한테 그렇게 하도록 제가 허락한거죠?!"("Why did I do all those things that he told me to do?! Why did I let him do that to me?!")[0]

그리고 10년도 넘어서 글로리아는 당시 상담에 대해 이런 의견을 남겼습니다. "짧은 세션 끝에서 저는 자신의 일부가 파괴된다고 느꼈어요. 그 세션 후에 저의 온전한 자아가 어떻게 산산히 부서졌는지요"("I felt a bit of myself destroyed at the end of that short session ... How shattered my whole being felt after that session")[1]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리아는 이 사람을 선택했었습니다.

글로리아가 죽고나서 그녀의 딸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으로 냈습니다. 거기에는 글로리아가 칼 로저스랑 계속 인연을 이어 온 것, 얼마나 칼 로저스를 신뢰했는지 등이 나와있으며,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당시 촬영직후의 선택을 후회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상담 이후 진정 글로리아를 성장하게 한 것은 칼 로저스와의 15년 동안(갑작스럽게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의 애정어린 서신 교환 덕분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글로리아를 비난하는 조언은 그녀를 성장시키지 못했습니다.

코칭을 하면서 이런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뭔가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공격 받아야 나에게 실제로 도움되는 걸 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 한의원에 가서도 침으로 몇 군데 콕콕 쑤셔줘야 치료 좀 했다고 느끼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칼 로저스 방식이 정말 글로리아에게 "도움이 됐을까?"하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레이라 등의 2011년 연구를 보면[2] 칼 로저스와 상담을 할 때 글로리아의 네러티브가 다른 두 상담자와 할 때에 비해 훨씬 더(1 표준편차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면적입니다. 당연히 이럴 경우 상담효과가 좋습니다.

심리상담학이 수십년 연구를 통해 결론을 내린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내담자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거나 부정적이었다는 것이고, 동시에 내담자들은 이 방식에 현혹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예컨대 중독상담 쪽에서도 내담자와 직면(당신은 틀렸다)하고 내담자를 비난하는 방식은 실제로 중독치료의 효과가 떨어졌습니다(관심있는 분들은 동기면담Motivational Interviewing 쪽의 연구를 참고하세요).

혹시나 상담은 다른 이야기이고, 나는 "교육"을 얘기하는 거라고 반박하는 분이 있을까봐 또 다른 연구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넬리우스-화이트는 2007년에 출판한 자신의 논문[3]에서 355,325명의 학생, 14,851명의 선생, 2,439개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119개의 연구, 1450개의 효과)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소위 칼 로저스 방식의 사람/학습자 중심이었는가(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 공감, 비지시성 등)하는 것은 학생의 학업성취와 태도(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전반에서)에 미치는 효과크기가 0.72이었습니다. 특히 비지시성(non-directivity 즉 학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것)의 효과크기는 0.75에 달했습니다. 참고로 교육학 연구에서 효과크기가 0.7을 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큰 효과"에 속합니다.

이 글로리아 필름에서 일반인들에게 교훈이 있다면, 쓰다고 꼭 몸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또 그걸 통한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0] https://www.centerfortheperson.org/papers/gloriaa-historical-note.php?fbclid=IwAR3XgBqCg5AbmKTViMpFlArLsmzu7ksrYNMAacdfiKorBze-O0IR9FJ_-P8
[1] Dolliver, R. H. (1991). Perls With Gloria Re‐reviewed: Gestalt Techniques and Perl's Practices. Journal of counseling & development, 69(4), 299-304. 에서 재인용
[2] Moreira, P., Gonçalves, Ó. F., & Matias, C. (2011). Clients' narratives in psychotherapy and therapist's theoretical orientation: An exploratory analysis of Gloria's narratives with Rogers, Ellis and Perls.
[3] Cornelius-White, J. (2007). Learner-centered teacher-student relationships are effective: A meta-analysis. 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 77(1), 113-143.

p.s. 그렇다고 해서 솔직한 피드백을 해주지 마라, 좋은 게 좋은거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신 이럴 경우 굉장히 스킬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1. 조언보다는 정보. 조언은 "당신은 간 수치가 얼마다. 지금 술을 끊지 않으면 죽는다. 당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다." 정보는 "당신의 간 수치는 인구에서 몇 퍼센타일에 해당한다. 이럴 경우 사망률은 어떻고, 그래서 위험군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통상 권하는 방법은 이런 게 있다. 조언보다 정보의 형태로 주어졌을 때 내담자가 행동을 수정할 확률이 높다.
  2. 나를 낮춘다(self-discount). "내가 당신의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등으로 나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경우 상대가 행동을 바꿀 확률이 높다.
  3. 자율권 인정. 결정권은 결국 상대에게 있다는 걸 인정하고 강조하는 경우 상대는 행동을 바꿀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결국 당신이 결정할 일이지만" 등.
  4. 하나보다는 여럿. 제안을 해야 할 경우 한가지보다는 동시에 여러가지를 제시하는 것이 상대의 자율성을 덜 침해한다.
  5. 끌어내고 제공하고 끌어내기(Elicit-Provide-Elicit). 먼저 상대가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미 뭘 알고 있는지, 어떤 시도를 했는지 등을 물어서 끌어낸다. 그 다음에 내가 추가적 정보를 제공한다. 그 후에 상대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시적으로 묻는다("제 얘기를 들으니까 어떠세요?" 등).
그런데 이런 걸 잘하려면 훈련이 많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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