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예술 소설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이 우울하면 우울할 수록 이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난 아니어서 "이게 뭔 내용이야" 싶을 때가 많았지만 말이다.
해리 장애
해리 장애란 극심한 스트레스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의식, 기억, 정체감 등이 붕괴되는 상태를 말한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마치 해리 장애를 겪는 사람의 내면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과 감정, 자아의 경계가 흐려지고,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상태 말이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는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 이 소설이 보여주는 감정은 사랑 같으면서도 사랑이 아니고, 집착 같으면서도 단순한 집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조차, 어쩌면 작가조차도 이 감정의 정체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 알 수 없는 붕괴 속에서 자아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읽는 동안 마치 붕 떠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는 희망도 절망도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이 혼란스러운 마음의 끝이 어디인지 끝까지 확인하고 싶다는 듯 이야기는 끝까지 엉망진창으로 마무리된다.
엉망진창의 모순
이 책을 읽고 불쾌함을 느낀 독자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소설이 오히려 좋은 소설이라고 느낀다.
어딘가에는 분명 이런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게 잠깐일지라도 말이다.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예를 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기도 한다.
오직 나와 사랑하는 사람 둘 뿐이라고 여기던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갑자기 죽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울다가 지쳐서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러가게될까, 머리를 벽에 찧으며 슬픔을 달랠까, 화장을 하든 묻든 해야하는데 그런건 또 어떻게 하랴 소중한 사람이 바스라지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소설의 감정은 어느정도 공감이 가능하다.
자아가 붕괴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스트레스는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이든 불가항력적인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서든 상관없이 나타난다.
그 고통 속에서도 사랑은 꿈틀댄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해서 사랑을 못하라는 법이 있으랴.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분명 구와 담은 성장해나가는 올바른 사랑을 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집착일 수도 있고, 불행을 같이 떠안는 것을 마치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란 법도 있다.
유일하게 내가 이성을 버리고 지켜야하는 무언가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 꼭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만 전해야 할까.
불편하고 극단적이기에 오히려 소설다운 작품이며,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의 그 이상을 표현해낸 작품이 바로 '구의 증명'이다.
내용이 지나치게 기괴해 불쾌감을 준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기괴함이 오히려 이 책의 메시지가 아닐까.
독자들이 느끼기에 "난 이 정도는 아니다" 싶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구와 담은 당신의 추악한 모습보다 그 이상으로 대신 엉망진창이 되어 당신의 추악함을 별거 아니라는 듯 위로해준 모순이 아니겠는가.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급류 - 정대건 (1) | 2026.01.20 |
|---|---|
| 코뿔소 - 외젠 이오네스코 (0) | 2025.03.29 |
| 모순 - 양귀자 (0) | 2025.03.27 |
|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0) | 2025.02.08 |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 | 2025.01.27 |